주일 설교

    2025. 03. 23.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2025-03-23 15:31:15
    한재현
    조회수   48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신 1:24-33)

    어느 시대에나 방향을 잃고 어디로 갈까?”를 고민하는 일들은 항상 있었습니다. 현대인들에게 이 질문은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현실적인 질문일 때가 많습니다. 세상은 각자도생(各自圖生)으로 개인의 삶의 안전을 확보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 속에서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며, 무엇으로 안전을 확보하며 삶의 질을 높여 살 수 있을까요?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해야 합니다(30, 33, 33:6). 모세는 비교와 낙심, 불평과 원망으로 분노하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말씀합니다. 이는 버텨낼 수 없는 상실감과 좌절이 밀려올 때 우리가 다시 회복할 수 있는 길이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에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보다 먼저 앞서 가십니다. 한치 앞도 모르는 우리의 걸음마다 길이 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앞서 가신다는 것은 하나님 그분이 우리 앞에 계신다는 것입니다. 얼굴로 비추고 계십니다. 우리의 모든 영역에서 확실한 모델처럼 앞에 계십니다. 그래서 그 분 따라가면 됩니다. 이것은 그분이 우리의 비전이요, 목적임을 의미합니다. 그 비전이 분명할 때 흔들리지 않을 수 있고, 비전이 확실하게 보일 때 낙심을 이길 수 있으며, 그 비전이 진실하고 하나님의 선에 부합할 때 그것은 나 자신과 많은 사람을 유익하게 할 수 있습니다(삼상22:2, 57:7-9절 참고). 문제는 우리의 비전(목적)이 선하지 않을 때가 많다는데 있습니다. 비전과 욕망을 혼동하고, 감추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그러니 앞서 가시는 하나님께 내 비전의 초점이 분명해야 합니다. 앞서 가시는 하나님을 유일한 비전, 온전한 비전 삼고 그분 따라 한 걸음씩 올라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안아서 여기까지 이르게 하심을 신뢰합시다. “안으사라는 히브리어 나싸들어 올리다, 가지고 가다, 취하여 가다.”라는 뜻입니다. 즉 번쩍 들어 올려 품어 주시는 것입니다. 길을 갈 때 넘어지지 않도록, 또는 무엇인가에 빠지지 않도록 번쩍 들어 안아주시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이곳까지, 즉 애굽에서 여기(가데스바네아)까지 하나님이 그렇게 품고 감싸서 오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해서 자꾸만 자기들의 공로가 가미되었을 것으로 착각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불평과 원망으로 하나님을 대적하여 하나님은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 선언하십니다. 그러자 그들이 회개 같은 것을 합니다(41, 45). 그리고 자기들이 싸우겠다고 가나안으로 경솔하게 거리낌 없이 올라갑니다(42, 43). 그러나 하나님은 듣지 않으십니다. 사람들은 많은 경우 내 노력으로 얻으려 하고, 내 공로를 나타내려 하며, 내 자존감을 드러내려 합니다. 그런 경우 대부분 승리해도 문제이고, 실패해도 문제가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들어 올려서, 하나님이 취하여 주셔서, 하나님이 가지고 가심으로 되어진 것일 때 인간은 그 앞에서 겸손해 질 수 있습니다. 안아서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반항하지 말고 그냥 내 온 몸과 마음을 의탁하여 여기까지 이르게 하시는 은총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느 시대에나 우리가 어디로 갈꼬?”의 탄식 어린 고백은 있어 왔습니다. 우리가 듣고, 읽고, 보는 정보들은 내적 갈등을 심화시키고 무너지게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주는 정보는 믿음과 소망으로 삶을 이기게 합니다.

     

     

    댓글

    댓글쓰기 권한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