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

    2025. 04. 20.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면
    2025-04-20 15:43:44
    한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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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면  (막 16:1-11)

    죽음은 모든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갖게 합니다. 세상에 있는 그 어떤 것도 죽음의 문제를 명쾌하게 해결해 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 죽음은 정복하지 못해 괴로워해야 할 문제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부활의 노래를 부르는 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와 그분의 살아나심, 그것이 나의 부활을 확증하는 소망이기에 목이 터져라 승리의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본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소개합니다. 그 일들을 생각하며 우리도 그 예수님을 만나기를 소망할 수 있기 바랍니다.

    예수님 만나면 모든 돌이 굴려집니다(4). 1-3절을 보면 안식 후 첫날 이른 시간에 세 여인은 예수님 묻힌 무덤으로 가면서 누가 이 돌을 굴려 주리요?” 걱정했습니다. 무덤 문을 단단하게 인봉하는 것을 보았던 그들은 무덤 문을 막은 큰 돌을 움직일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15:40-47). 더구나 이 문은 로마 군인들이 철저하게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 여인들은 예수님을 끝까지 따랐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죽음에 갇혀 버린 예수님이지만 그 시신을 위해 향유를 준비하는 사랑과 헌신을 보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에게 해결해 줄 수 없는 커다란 고민이 있었습니다.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그런데 약 2000년 전 연약한 여인들이 했던 그 질문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있는 실존적 질문이기도 합니다. 우리 앞에 놓인 어려운 환경들이 있을 때마다 우리는 이 질문을 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 돌은 인생들이 지고 있는 죄의 짐입니다. 그 돌은 절망의 돌입니다. 그 돌은 실망과 허탈감의 돌입니다. 그런데 4절에서 벌써 돌이 굴려져 있는데라고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인생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무거운 돌을 단번에 굴려 버렸습니다. 죄악의 짐이 굴러갔습니다. 해결할 수 없어서 쩔쩔 매던 그 죄악의 짐, 앞으로 오고 오는 미래의 모든 죄의 짐까지도 근본적으로 다 굴러가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떤 권세도 우리를 정죄할 수가 없습니다(8:1-2). 죄의 영향으로 오는 절망과 두려움, 낙심과 소망 없음의 감정들도 부활의 주님을 통하면 물러가게 됩니다.

    믿고 증거하는 자가 됩니다. 본문이 증거하는 사실 한 가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인간의 이성적으로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8절에 보이는 여인들의 반응은 놀라 떨며,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 말도 못하더라입니다. 11절에서도 마리아의 증거를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13절에서도 제자들이 역시 믿지 아니하였다고 말씀합니다. 그들이 정말 믿음이 없어서 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인간의 이성적으로는 도무지 설명할 수 없고, 납득할 수 없음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부활을 믿지 아니하는 것이 사실은 타당하고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불신앙과 회의를 어떻게 넘어서느냐는 것이 중요합니다(14). 본문에 등장하는 여성들과 제자들은 부활의 주님을 만나 이 불신앙을 넘어서서 믿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증거하는 삶을 삽니다(7, 10, 15절 참고). 7절에 천사(청년)가 이르는 말 중에 중요한 동사가 나옵니다. “가서, 말하라, 먼저 가리라,”입니다. 또한 이 말은 10절에서 마리아가 가서, 알리매 라는 말에서 실천되어지고 있습니다. 15절에서 예수님이 친히 제자들에게 다니며, 전파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부활을 믿고 경험한 사람들의 사명입니다. 부활은 우리만 즐기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나누고 증거해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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