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
선택에 기로에 있을 때 ... (렘 40:1-12)
본문은 예루살렘이 멸망한 후에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되어진 일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놓인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수많은 선택을 하며 살아갑니다. 선택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 결정되어집니다. 선택은 그가 가진 가치관을 드러내 줍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무엇에 가치를 두고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선택하는 예레미야를 볼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결박된 채 끌려가던 중 느부사라단의 도움으로 라마에서 풀려났습니다(1절). 느부사라단은 예레미야에게 바벨론으로 함께 갈 것을 제안하며 그를 돌보아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더 이상 포로로 가는 것이 아니라 바벨론의 손님으로 가서 그의 보살핌을 받게 해 주겠다는 것입니다(4절). 예레미야는 바벨론으로 가서 편안하게 사는 것보다 남아있는 백성 중에 머무는 것을 선택합니다. 예레미야가 추구한 중요한 가치가 무엇일까요? 그는 육신의 편안한 삶을 따라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① 말씀의 가치를 선택의 최우선 조건에 두었습니다(사8:16, 17절 참고). 선지자는 말씀이 있을 때 삶의 이유가 있습니다. 말씀이 끊어지면 더 이상 선지자가 아닙니다. 그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았던 사람입니다. ② 영적 가능성이 선택의 기준이었습니다. 지금 유다 백성들은 정치적으로는 망했지만 영적으로 망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남겨두신 백성들을 통하여 다시 회복하게 하시는 그것을 바라보는 소망이 그의 선택 기준이었습니다.
나는 선택의 기로에 놓일 때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이 우리의 최고, 최상의 기준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영적 가능성을 볼 수 있는 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자기 유익을 따라 선택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시드기야왕을 포로로 잡아간 후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를 유다 총독으로 임명합니다. 이 소식을 들은 들에 있던 많은 지휘관과 그 부하들이 그다랴에게로 몰려들었습니다(7-8절). 그다랴는 몰려든 사람들에게 바벨론 왕을 섬길 것을 명하면서 그 길이 그들에게 유익한 것이라고 말합니다(9-10절). 많은 사람이 정치적 상황에 따라, 혹은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그다랴에게 와서 살았습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자신의 유익을 찾아 이리 저리 몰려다니며 삽니다. 문제는 인간은 죄로 인해 자신에게 무엇이 유익한지조차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다는데 있습니다(창13:10-13참고). 학식과 경험, 정치적 흐름에 따라 판단하는 것에는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무엇을 선택의 기준에 두고 있는지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갈등하는 지도자 그다랴의 모습과 순간의 선택이 생명을 좌우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미스바에 모여든 많은 사람들 중에 그다랴의 권면과 지도력에 전적으로 순응하는 것은 아닙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이스마엘입니다. 그가 암몬 왕과 손잡고 음모를 꾸몄습니다(13-14절). 이스마엘의 잘못됨을 알고 있는 요하난이 그를 죽이게 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 그다랴는 그 요청을 거부하고, 이스마엘에 의해서 암살당하고, 이스마엘은 그다랴에 속한 지도자를 모두 죽이게 됩니다. 그다랴의 갈등은 정치적인 유익을 좇아 행한 갈등이었습니다. 이제까지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정치적 안정, 또는 추앙받는 지도자라는 인간적인 조건이 그에게 유혹했을 것입니다. 요하난의 경고를 무시하지 않았더라면 자기의 생명과 많은 생명을 빼앗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의 영이 항상 깨어있는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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